잉글랜드 캡틴 개리 케이힐은 왜 마틴오닐 체제 하에서 빌라를 떠났나? by 맷 켄드릭
뉴스/가쉽 & 기타

잉글랜드 캡틴 개리 케이힐은 왜 마틴오닐 체제 하에서 빌라를 떠났나? by 맷 켄드릭

반응형


by 맷 켄드릭 of 버밍엄 메일



개리 케이힐은 현재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장입니다.


가레스 사우게이트는 최근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케이힐을 삼사자 군단의 주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보디무어 히스 (주: 빌라 유스아카데미가 위치한 훈련장)에서 손꼽히는 재능이었던 케이힐은 2008년 아스톤 빌라를 떠난 이후로 더욱 성장하고 또 성장했습니다.  


그가 세컨시티 더비에서 골을 넣었던 날을 기념하여, 우리는 그가 웨스트 미들랜드 (주: 버밍엄이 위치한 주)에 있을 때의 시간을 되짚어보기로 합시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 마틴 오닐은 9년 전 그의 이적을 어떤 이유로 승인했을까?



어린시절



케이힐은 그의 고향인
 더비셔의 팀 AFC 드론필드에서 유스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여러 클럽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지만, 결국 빌라가 그를 낚아챕니다. 케이힐은 15세의 나이로 보디무어 히스 아카데미에 입성하게 됩니다.


04-05시즌 그는 성장을 위해 챔피언쉽의 번리로 한 시즌간 임대를 가게 됩니다. 임대 기간 동안 32경기에 출장했으며 18살의 나이로 챔피언쉽 최우수 선수 상과 최우수 영플레이어 상을 휩씁니다.




빌라시절


케이힐의 데뷔 경기는 인상깊었습니다. 2005년 9월  위컴 원더러스와의 리그 컵 경기였는데 하프타임까지 3-1로 뒤지고 있었지만 후반전에만 7골을 몰아치며 8-3으로 경기를 뒤집은 경기였습니다. 


다음해인 2006년 4월 1일, 케이힐은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합니다. 하이버리에서 아스날에게 5-0으로 진 경기인데, 케이힐은 3-0으로 뒤진 52분, 율리시스 델라 크루즈를 대신해 교체 출장합니다.


케이힐은 그 다음주 WBA전에서 선발 출장을 하게 되고 클린 시트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주, 아직도 빌라 팬들에게 최고의 세컨 시티 더비로 기억되고 있는 경기에서 케이힐은 환상적인 오버헤드 킥으로 득점하며 3-1 완승을 이끌어 냅니다. 그리고 오리어리 체제하에서 6경기 연속 선발 출장을 이어가게 됩니다.  





마틴 오닐이 오다





오리어리가 가고 마틴 오닐이 새로운 빌라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케이힐은 부상으로 팀에서 이탈해 있다가 2006년 11월 팀에 돌아왔습니다.

케이힐은 마틴 오닐의 첫 시즌 동안 빌라에서 리그와 컵 경기를 다 합쳐 21경기에 출장했고, 그 중 20경기를 선발 출장했습니다. 케이힐은 리암 리지웰이나 올로프 멜베리와 짝을 지어 센터백으로 출장했습니다.


하지만 오닐이 2007년 여름 이적시장 막바지에 2명의 센터백을 영입하며 케이힐의 입지에 불길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풀럼에서 잿 나이트가 이적해 온 것과 WBA로부터 커티스 데이비스를 임대 영입한 사실은 케이힐이 5개월 후 팀을 떠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빌라는 다음해 여름 카를로스 쿠에야르와 제임스 콜린스 그리고 리차드 던을 영입했습니다.

케이힐은 리버풀과의 07-08 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교체 출장, 그리고 렉스햄과의 리그 컵 경기에서 선발 출장 이후, 케이힐은 3개월간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임대를 떠났습니다.


그는 12월 중순에 빌라로 복귀했지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습니다. 



1월의 영입 전쟁


2008년 초 오닐은 케이힐은 잉여전력으로 분류했습니다. 오닐은 잿 나이트와 마틴 라우르센을 센터백 듀오로 활용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와 베식타스, 버밍엄 시티가 케이힐을 노리고 있었고, 당시 버밍엄의 감독이었던 알렉스 맥클리쉬는 공개적으로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개리 케이힐은 우리가 존중하는 선수이고, 그를 버밍엄 시티로 데려오길 원한다."라고 맥클리쉬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버밍엄이 케이힐을 임대영입하고 싶어하는 동안, 빌라는 완전 이적을 바랐고, 그는 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볼튼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유쾌하지 못했던 케이힐의 빌라파크 방문



케이힐은 볼튼 옷을 입고 2008년 4월, 12월, 2009년 11월 빌라 파크를 방문했지만 빌라에게 4-0, 4-2, 5-1 패배를 당하며 총 13골을 실점했습니다. 

한편 케이힐이 빌라를 떠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잿 나이트가 볼튼으로 이적해 케이힐의 센터백 파트너가 된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승선



약간의 부침을 겪었지만 케이힐은 볼튼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국가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빌라 시절 U-21 팀의 일원으로 뛰었고,  2009년 6월 국대에 차출되었지만 2010년 9월이 되서야 마이클 도슨 대신 교체되어 들어가며 첫 데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케이힐은 그 뒤로 50 경기 이상 꾸준히 출전했고 2015년 10월에 펼쳐진 유로 2016 지역예선 에스토니아전에서 주장 완장을 처음 찼습니다. 그는 웨인 루니를 도와 부주장으로 최근 몇 년간 뛰었습니다.  





첼시 이적




볼튼과 잉글랜드 국가대표에서 보여준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케이힐은 2012년 1월 700만 파운드의 금액으로 첼시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첼시로 합류한 케이힐은 14-15 프리미어리그 우승, 11-12 FA컵 우승, 14-15 리그컵 우승, 11-12 챔피언스 리그 우승, 12-13 유로파 리그 우승에 기여합니다. 


그는 이제 존 테리를 대신해서 첼시 주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오닐의 말


"케이힐을 보낸걸 후회하냐고? 아니."

"그는 밀려난게 아니다, 그리고 개리는 원하던 선발 출장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볼튼은 500만 파운드를 우리에게 지불했고 추후 이적 수수료 옵션까지 얻어서 기쁘다."


"그는 행복하게 떠났고, 우리 역시 행복하다. 그리고 여전히 그 상황에 대해 기쁘다."


"개리는 꾸준한 출장을 원했고, 볼튼은 그에게 꾸준한 기회를 줬다."




케이힐의 말



"마틴 오닐은 대단한 감독이다. 모든 사람은 때때로 실수를 하고, 오닐은 그 실수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다. 빌라는 좋은 센터백을 데려왔고, 그들은 잘 할 거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때 팬들은 대단했고, 떠날때 역시 팬들에게 좋은 감정으로 떠난다.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진 사람들이다."


"나를 떠나게한건 팬들이 아니다."


"커리어에서 약간 실패를 맛볼때, 그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뭔갈 얻는다."


"마음 속에는 언제나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있다."


"팀을 떠나는게 최선이라는걸 알고 있다. 마틴 오닐은 내 이적을 허용해줬고, 그는 그 당시 그 결정이 옳은 일이라는걸 명백히 느꼈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이 틀렸다는걸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그게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었다."





빌라 관련 뉴스라면 거의 내부자 수준에 가까운 버밍엄 메일 맷 켄드릭 기자가 쓴 글이라 뭔가가 있는 줄 알았는데 속았네요. 번역하기 전 알았어야하는데 재밌을 거 같아서 제목만 읽고 번역하다가 사기당한 기분입니다. 그냥 오닐은 지가 보내놓고 끝까지 옳은 결정이라고 한거고 케이힐은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좀 있다는거네요. 다 읽지도 않고 번역해서 미안합니다 하하. 근데 해놓은게 아까워서 어쩔 수 없이 올립니다.


여하튼 스포츠에 만약이라는건 없지만, 케이힐이 빌라에 계속 있었다면 과연 국대까지 뽑힐 정도로 성장했을까요...? 똥피알시절 훌리오 세자르처럼 강제 레벨업해서 볼튼 안거치고 바로 첼시 갔을수도 ㅋㅋㅋㅋㅋㅋ 

반응형